태안 기름피해 비관자살 어민 장례식

(태안=연합뉴스) 유의주 기자 = "수려한 태안반도에 검은 악마가 몰려온 지 한달..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옛 모습을 되찾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지만 우리 앞에는 절망의 늪만 남아있습니다. 앞으로 제2, 제3의 희생자가 나오지 말란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기름 유출사고로 양식장에 큰 피해가 발생한 것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故) 이영권씨의 장례식이 거행된 14일 충남 태안군청앞 광장에서 장례위원회 이원재 공동위원장은 영결사를 통해 이렇게 절규했다.

아직도 가시지 않은 기름찌꺼기를 닦아내다 흰색 방제복에 방제화를 신고 장례식장을 찾은 주민들을 포함해 1만여명의 장례객들의 얼굴에는 이 씨의 죽음이 남의 일이 아닌 것처럼 안타까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장례식장 중앙에는 이씨의 영정사진을 중심으로 좌우에 기름피해에 찌든 바닷가와 기름에 절어 죽어가고 있는 새들,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주민들의 방제작업 사진 등이 내걸렸다.

"누가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나요, 누가 우리를 지키는 울타리인가요.. 엄청난 사고를 낸 당사자들은 침묵하고 있고,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진정한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영결사의 내용을 반영한 듯 장례식장 양편에 자리잡은 수백여개의 만장에는 `기름피해 진짜주범 삼성그룹 무한책임', `검은 바다 검은 사람앞에 새까만 정부는 각성하라' 등 사고를 낸 기업에 대한 철저한 책임추궁과 정부의 신속하고 완전한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원색적인 글들이 쓰여 있었다.

진태구 태안군수는 조사를 통해 "기름으로 망가진 바다와 자식같이 가꿔놓은 양식장을 바라보면서 가슴을 쥐어뜯고 통곡하며 오열하던 선생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면서 "바다를 빠른 시일 내에 회복시켜 지금보다 더 깨끗한 바다, 생명력 넘치는 바다로 가꾸는 것이 선생의 한을 풀어드리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두번 다시 이 같은 원통한 죽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을 방지하고 책임을 분명히 규명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씨의 시신은 장례식후 태안해양경찰서와 소원면 의항해수욕장에서 각각 노제를 치른 뒤 의항리 선산에 안치됐다.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해변에서 굴양식장을 해오던 이씨는 원유유출 사고로 자신의 양식장에 큰 피해가 발생하자 처지를 비관해 지난 10일 오전 집에서 극약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